고 이중표목사님

별세의 신앙공동체

  • 01 별세로 승세한 한신교회

    대부분의 목회자는 목회의 기술과 능력의 부족 때문에 괴로워한다.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좋은 목회의 방법론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내가 철저하게 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라고 외치는 목회자가 있는데 그가 바로 한신교회의 이중표 목사이다.

    1977년에 개척된 한신교회는 현재 기장측 교단에서는 가장 크게 성장한 교회이다. 출석 성도 1만 명이 넘는 초대형 교회는 아니지만 교회 성장에 대해 소극적이다 못해 부정적인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기장측에 속한 교회이면서, 장년출석이 3천 명에 이르고 연간 예산이 30억 원 가량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요, 이 시대의 기적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한신교회는 그 교회의 규모보다는 그 교회가 가지는 독특한 자화상과 담임 목회자의 목회철학으로 더 유명하며 또 그만큼 한국교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목회자는 별세목회를 하고, 성도는 별세신앙을 살며, 교회는 별세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10여 년간 계속되어 온 한국교회의 정체와 무기력을 극복하는 길은 목사와 성도가 예수 안에서 죽는 길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한국교회의 별세목회를 연구해보도록 하자.

    위 글은 명성훈목사(교회성장연구소 소장)의
    <부흥뱅크>(규장출판사 간)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 02 별세의 신학

    이중표 목사가 주장하는 별세신학의 개념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느낌을 가지게 한다. 별세목회, 별세신앙이 지난 수 년간 회자되고 있지만 딱부러지게 "별세목회 혹은 별세신앙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그리 간단치는 않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의 저술과 설교와 면담을 통해 정리되는 별세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 자체에서 발견된다.

    누가복음 9:31에 보면 변화산상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별세'의 의미는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키지만 근본적인 뜻은 예루살렘을 떠난다는 것을 말한다.

    즉, 별세란 '죽는다'는 개념과 함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도 참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체험을 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살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이 죽으면 이승에서 저승으로, 현세에서,내세로 옮겨진다고 하는데 그것은 모든 고등종교의 기본적인 교리이다. 이러한 별세의 진리가 없는 종교는 참 종교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기독교의 별세신학은 이 다음에 죽어서 천국에 가는 차원으로서가 아니라 예수를 믿었다면 지금 이 세상에 살면서도 별세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의 신학적 확신이다. 그는 현세에서 별세를 살지 못한다면 죽은 후에도 천국을 확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신학적 확신은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도 확증되고 있다. 갈라디아서 2:20이 바로 별세신학의 근간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구원이란 나를 위해 별세하신 예수를 믿는 믿음의 결과이다. 즉 회심의 신앙고백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인 되게 하려면 예수가 그러하셨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리스도와 함께 별세하는 신앙고백과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나를 위한 예수의 죽음과 함께 예수를 위한 나의 죽음이 체험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목회의 신비이다. 목회란 결국 사람을 구원하는 일인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죽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예수가 죽었기에 내가 산 것처럼, 내가 죽어야 다른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진리가 바로 목회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는 힘든 사역이다. 능력과 은사를 받는 것도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 이전에 목회자 자신이 철저하게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목회가 잘 되지 않고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 별세는 믿으면서도 자기 별세는 믿지 않고 입으로 믿는 종교인은 되었어도 삶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은 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위 글은 명성훈목사(교회성장연구소 소장)의
    <부흥뱅크>(규장출판사 간)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 03 별세의 영성

    교회성장을 진실로 원한다면 교회성장을 추구하기 전에 목회자 자신의 영성에 책임을 지는 자세의 일대 변혁이 필요하다. 또한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영성과 함께 전문성이 따라가야 한다. 영성이 생명으로서의 교회를 책임진다면 전문성은 조직으로서의 교회를 책임지게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전문성도 모자라지만 영성의 개발이 더욱 시급한 당면 과제이다. 성도들은 말 잘하고 일 잘하는 목회자보다 예수님을 닮은 목회자, 예수 냄새가 나는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예수처럼 사역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예수처럼 사역하기 위해서는 예수 별세가 나의 별세가 되어야 한다.

    요즘 들어 목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목적이 이끌어가는 사람이 성공자요, 목적 지향적인 교회가 성장한다는 논리이다. 아무리 기술과 방법이 뛰어나도 목적이 상실되거나 변질되면 결국 실패요 패배라는 것이다. 예수님이야말로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사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마가복음 10:45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사람을 위하여 별세하러 오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목회자의 영성이란 바로 예수의 영성이요, 예수의 영성은 바로 별세의 영성이다. 주님께서는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배울 최대의 교훈은 바로 주님처럼 사람들을 위해 죽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별세하러 오셨고 제자들에게 별세를 가르치셨다(마 15:21). 사도들은 이 진리를 깨달은 자요, 역사상 하나님의 종들은 이러한 별세의 진리를 몸으로 체험한 자들이다. 교회란 바로 별세의 공동체이며 교회성장이란 바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별세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영성, 진정한 성령충만은 별세 그 자체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별세를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실천하지 못했다. 예수와 함께 영광을 누리는 데 바빴고, 예수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을 때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하기에 바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을 들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자 그들은 별세를 이해했고 그 별세를 소원했으며 결국 예수님처럼 복음을 위하여 별세하고 말았다.

    영성이란 바로 별세의 삶을 사는 것이다. 목회자의 별세적 영성에 대해 이중표 목사는 단호하게 이렇게 고백한다. "목회자의 최대 과제는 먼저 별세의 증인이 되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별세를 통하여 구원을 성취하듯 목회자는 별세를 증거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별세함으로 모든 사람을 별세시키듯 목회자가 별세되어야 교인들이 별세하게 된다."

    위 글은 명성훈목사(교회성장연구소 소장)의
    <부흥뱅크>(규장출판사 간)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 04 별세의 사역

    별세의 신학과 영성을 가진 자만이 별세의 사역을 실천할 수 있다. 이중표 목사의 별세목회, 별세사역은 주목할 만하다. 우선 기도의 사역이 별세의 기도이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거나 환경을 바꾸어달라는 기복적 기도가 아니라 나 자신을 변화시켜 달라는 기도, 죽여달라는 별세의 기도를 가르친다. 문제가 해결되고 소원이 성취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문제와 필요가 계속해서 생기게 되고 그럴 때마다 계속해서 부르짖는 악순환만 되풀이 될 뿐이다. 차라리 내가 죽고 성령이 임하심으로써 모든 문제를 초월하는 별세의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한 해결책이 된다. 그런 점에서 주기도문야말로 가장 완벽한 별세의 기도라고 이 목사는 주장한다.

    설교와 훈련사역도 별세에 초점을 맞춘다. 우선 설교의 모든 메세지를 별세라는 주제로 집중하고 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인간 자신의 행복이라고 한다면 영광과 행복은 별세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성도가 별세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은 설교만으로는 불가능함을 이중표 목사는 최근 들어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제자훈련적 방법으로 별세를 위한 훈련사역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훈련을 시킬 때 영적 지도자는 별세하는 자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한신교회에서는 장로가 되려는 이들에게 별세의 조건을 수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장로가 되기 위한 별세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장로임직을 위한 별세의 조건

    • 1. 별세훈련 2년을 마칠 것
    • 2. 교회 한 개 이상을 개척할 것
    • 3. 온전한 십일조를 5년 이상 드릴 것
    • 4. 죽을 때 장기를 기증할 것
    • 5. 이 모든것을 이행하겠다는 자발적 서약서를 제출할 것

    이상 여섯 가지는 어려운 조건일 것 같지만 이러한 조건을 기꺼이 수용하고 장로가 되고 싶어하는 성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특별히 두 번째 사항에 주목하게 된다. 이중표 목사가 내건 별세목회의 한 가지 표현이 교회의 개척지원이란 사실이 특이하다. 그는 별세란 내 것을 포기하고 남을 살리는 것이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한신교회를 통해서 100개 교회를 개척할 것을 서원한 이중표 목사는 지금까지 50여 개 교회를 설립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비젼은 모든 성도들이 일인당 한 개씩의 개척교회를 설립하는 일을 실현하는 것이다. 자기 교회만을 성장시키는 유혹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것도 별세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별세목회관은 개교회 경쟁주의로 멍들어 있는 한국교회에 신선한 충격이요, 실제적인 치유책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별세목회, 별세신앙은 참으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별세목회의 주창자인 이중표 목사 자신도 날마다 별세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민망해하고 괴로워하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래서 그가 늘 입에 달고 드리는 기도가 "주여, 나를 죽여주시옵소서."라는 기도라고 한다. 이처럼 별세목회는 분명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기쁨과 행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과 보람과 실질적인 사역의 열매가 보장되어 있는 길이다.

    목회, 특히 별세목회란 무엇인가? 별세목회자인 사도 바울의 고백을 음미하면서 해답을 찾아보자.

    위 글은 명성훈목사(교회성장연구소 소장)의
    <부흥뱅크>(규장출판사 간)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